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03
글쓴이 : 큰사과나무    작성일 : 2012-07-24    조회수 : 27252 첨부파일 : VFREVF8zMDYg.jpg
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03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을 형상화한  설치미술

잠롱 호프만의 갤러리를 관람을 하였다.

잠롱 호프만은 비싼 와이셔츠를 만드는 사업을 경영했으나 63년도에 미술작가들과 교제를 시작.

미술사 공부를 하며 비디오, 사진, 회화를 접하기 시작했는데 89년부터 미술품을 수집하였단다.

3개조로나뉘어 들어가느라 1조는 먼저 들어갔다.

나머지조는 1층카페에서 공짜 탄산수를 마시며 기다리는 동안 담소를 나누는 소리, 웃음소리가 계속 난다.

교포의 통역으로 관람을 하였다.

가이드이신 손갤러리 관장님과 친분이 있다는 에리카 호프만여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살림집이어서

신발위에 커다란 덧신을 신고 조용조용 관람을 하였다.

설명에 매달리다 보면 작품에 몰두를 못하므로 설명이 안붙었다고 하는것이 신선했다.

한방에 들어서니 사탕이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사탕은 적은 비용으로 손님을 접대할 수 있고,

수명단축과 에이즈를 상징하고 카톨릭의 성찬식의 의미도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쿠바 태생인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작품인데 작품명은 '로스'이고 사탕의 무게는 79kg인데

에이즈로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의 이름이 로스란다.

우리 하비람 도반으로 독일로 유학와서 공부하는 부메랑님도 합류하여 독일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지도 들었다.

7월말에 훔볼트 대학에 들어가 국제 정치학을 공부할 예정이라고.

 

 

점심은 체칠리언 호프 궁전으로 가서 현지식 식사를 하였다.

2차대전 종결을 선언한 포츠담 선언을 한 200여년 역사의 궁전인데 베르사이유궁의 축소판이란다.

1945년 7월 17일~8월 2일사이 미국 트루먼, 영국 처칠, 소련 스탈린이 모여 독일 전후 처리 문제와

일본을 항복시킬 대책을 논의한곳이란다.

호수도 있고, 공기도 좋고, 숲도 우거지고 경치가 좋더라니 러시아 왕들의 별장으로 쓰였단다.

식사로 고기와 감자가 나왔고 후식으로 산딸긴가 복분잔가가 나오고 요구르트가 나왔는데 섞어먹는줄 모르고

따로따로 먹고 있는데 가이드이신 손관장님이 웃으며 알려준다.

맞어.  엘비라 마디간이란 영화에도 산딸기에 크림을 섞어 먹는 장면이 있었지....

 

식사후 버스를 타고 상수시 궁전으로 갔는데 상수시란 말은 걱정이 없는이란 뜻이란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궁전이란다.

상수시 궁전 처마에 조각들이 시커멓게 된것이 흉물스러웠다.

마침 아침햇살님의 말씀에 영국에 가셨을때 밀레니엄이라고 조각이 시커먼것을 닦고 있는것을 보셨다고.

조각작품이 시커먼것은 오래돼서그렇다는 짤막한 가이드님의 말씀.

1736년 건물을 지었는데 7년전쟁후에도 이런 궁전을 지을수 있는 돈이 있다는 과시용이었다고.

내년이 프리드리히 서거 300년이라고 단장에 힘을 쓰고 있었다.

왕의 형제들이 9형제나 되어 딸린 식구들이 많고 왕의 손님들이 묵는 건물로 쓰기 위해 지었단다.

방이 무려 400개나 되어 시녀나 요리사들이 살았던 집도 따로 있을 정도였다.

25만 종류의 조개로 장식된 방도 있었다.

손님들이 많아 방배정을 받는 방이 있었는데 살림마을을 떠올리며 나눔의 방이라고 누군가가 말하여 와 웃었다.

남자귀족들이 주무시는 방이 있었는데 대개 정략결혼을 하여 대외적인 일에만 부인을 대동했지 잠자리는 따로 하였단다.

이궁을 지은 프리드리히 2세만 해도 아버지의 명으로 결혼을 한 왕비를 사랑하지 않아 평생토록 불행하였단다.

방의 침대가 작았는데 귀족들의 키가 작기도 했지만 암살에 대비하느라 쿠션에 기대서 잠을 잤다고.

호의호식하고 높은 지위에 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못하고 잘때도 다리 쭉 뻗고 편하게 잘수도 없는 신세라니....

궁건너편 요리사들의 거처에서 음식을 가져오다 음식이 식을 수 있으므로 땅굴을 파서 따듯한 음식이 식지 않도록

도르래를 이용하여 음식을날랐다는 얘길들으니 요즘말로 대~박!

 

다음 일정인 브레케 뮤지엄으로 가며 선생님 말씀.

상징을 읽을줄 알아야 하는데 싸인만 읽는다.

통합된 삶 그자체를 경축하고 축하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의식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며 통일 독일의 통일비용이 22조 5천억이 들었단다.

통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군인들 20년동안의 월급이 포함된 금액이라고.

상수시궁을 보다보니 세계에서 가장 작은 사립 미술관이라는 브레케 뮤지엄 관람 시간에 늦었다.

문을 여는 시간이 5시까지란다.

손관장님이 사정 사정을 했으나 경비업체 직원은 미술관 책임자만 OK하면 괜찬다고 하는데 책임자는 쌩하니 가버렸다.

역시 독일인 답다는 생각을 하였다.

넒은거울님이 버스를 타서 웃어버리자고 하면서 안내를 하셔서 우리는 웃음장 수련을하였다.

손갤러리에 잠깐들러 물, 쥬스, 샴페인, 과일을 먹다.

단종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린 화집을 감동하며 보았다.

저녁은 베를린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비어호프 식당으로 갔다.

흑맥주, 엘로우 맥주와 삶은 고기에 삶은 감자를 곁들인것과, 생선요리에 똥글감자를 (삶은 감자에 생감자 갈은것을 섞어

동그랗게 빚어 물에 삶은 요리라는 가이드님의 설명) 곁들인게 나왔다.

손갤러리에서 요기를 했고 독일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것도 있어서 요리를 많이 남겨서 미안했다.

브레케 뮤지엄 관람을 못한대신 유대인 박물관을 가기로 했다.

홀로 코스트 타워에 몇명이 들어갔는데 한사람이 소리를  내니 반대편 모서리로 소리가 부딪쳤다가

돌아오고 돌아오고 하니 공포 괴기 영화의 한장면 같다.

유대인들의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때도 이런 공포와 냉기를 느꼈겠지?

어둠과 웅웅거리는 공포스런 분위기에 서늘해지다가 타워 꼭대기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있었으니.....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희망을 이미지화 했다던  빅터프랭클 박사가 떠올랐다.

죽음과 부활 삶과 죽음, 좌절과 희망은 한몸이라는 생각도.

돌아다니다보니 책에서 보았던 '메나쉐 카디쉬만'의 설치미술 '떨어진 나뭇잎들'이 보였다.

그런데 거기로 갈려고 가다보니 엉뚱한 곳으로 가지는 바람에 불님의 안내를 받아서야 갈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나타내는 얼굴모양의 동전인데 비명을 지르듯이 입을 벌린 모양이었다.

그위를 한발한발 걸을때마다 떨겅떨겅 소리가 났다.

사진에서 본것보다 두툼한 부피감이 느껴졌고 애기 얼굴도 있어 마음이 찌르르했다.

12시간 초과근무를 하면 라이센스가 박탈된다고 해서 버스 기사는 우리를 박물관에 내려주고 돌아가고, 우리는 독일 지하철로

호텔로 돌아오는데 빈자리가 있어서 앉아 오는데 끝자리에 독일거지가 앉았는데 얼마나 오래 안씻고 안갈아입었는지

이가 스멀스멀 기어다니는게 보였다.

씻고나서 산들학교 선생님들에게엽서를 쓰고나서 잠을 청하는데 호텔근처에서 소란스런 음악이 들렸는데

피곤해선지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 5시에 눈이 떠졌다.

아침에 체크아웃 하면서 한국까지 70센트로 충분하냐고 물으니 충분하단다.

엽서를 직원에게 건네주며 부쳐주는 수고에 고맙다고 하며 팁으로 1달라를 주고 나왔다.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