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22
글쓴이 : 큰사과나무    작성일 : 2012-07-24    조회수 : 27351 첨부파일 : VFREVF8xODkg.jpg
유럽 현대미술관 여행 2011 6/26-7/12 - 022

드디어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를 볼 시간이다.

천지창조는 학교 다닐때 미술교과서에서 본 낯익은 그림이다.

천정화의 일부분이란걸 여기 바티칸에 와서 처음 본다.

1508년에 시작하여 1512년에 완성했단다. (미켈란젤로는 33살-37살)

처음엔 교황의 영묘를 제안 받았는데 자꾸 연기가 되다가 천정화를 그리고나서 영묘를 맡으라고 했단다.

천정화를 그리는데 4년 6개월이 걸렸다.

아파트 7층 높이의 천정에 건물지을 때 설치하는 비계를 깔고 천정에 구멍을 뚫고 천정밑에 천정을 만들어 밑에서 그림 그리는것을

보지 못하게 작업 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림을 그렸다.

물감이 눈에 떨어져 왼쪽눈은 실명, 목뼈는 변형됐고 신경쇠약, 어깨는 망가져서 통증이, 몸이 한 쪽으로 돌아가고 뒤틀렸단다.



.....내얼굴은 오색빛으로 물드네....그가 천정화를 그리면서 지은시의 일부



그림이 완성될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것과 선불 결제를 전제로 천정화를 맡은 미켈란젤로는 천정이 둥그스럼해도 평평하게 보이게

그리고 작은 액자, 큰액자로 번갈아가며 그렸다.

프레스코는 회반죽이 마르기전에 그림을 그리는 어려운 작업인데 미켈란젤로는 경험이 많지 않아 처음엔 그림 2개 그리는데 6개월이

걸렸는데, 천지창조는 1주일 밖에 안걸렸다.

율리우스가 "그림을 언제 볼 수있냐?"고 물으니 미켈란젤로가 "내가 완성했을 때가 그때 입니다."라고 말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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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사진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 아래사진 천정화중 아담의 창조 [둘다 신바람님 사진]


시스티나 성당에서 사진을 찍지 말라고 직원들이 "No, photo!" 라고 소리친다.

옆에서 사진찍는 남학생을 보니 한국인이다.

미술관안에 매년 관람객이 500만명 이상이 몰려 성당 미술관 온도가 4-50˚C가 넘는다니 예술품 보존을 위해 사진을 못 찍게 한단다.

1982년 일본 NHK 후원으로 최첨단기법을 동원하여 복원 작업을 9년에 걸쳐 실시하여 500년 물은때와 덧칠이 제거되어 본래의 색채와 형태가 되살아났다는 안내하시는분의 말씀이다.

고희의 마지막 여인숙에서도 일본의 후원에 고흐의 일생을 찍은 기념영화가 있었는데 바티칸의 예술품 보호에도 일본이 나서서 하였구나.

복원 작업 후원의 조건은 단하나. 작업하는 장면 촬영의 독점권을 달라는 것이었단다.

작품을 보다보니 눈길과 발길을 붙잡는 라오콘.

1506년 1.14일 로마 에스퀼리노의 농부가 포도밭을 파다가 땅밑에서 공중목욕탕 유적지를 발견했는데 그안에서 라오콘 군상을 발견.

발굴에 참여한 미켈란젤로도 "예술의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뱀에게 물려서 고통받는 처참한 모습이 금방이라도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릴 듯 하다.

발굴당시 팔한쪽이 없었는데 팔이 쭉 뻗어 있을거라는 주장을 사람들이 할때 미켈란젤로는 굽은 형태일거라고 주장했다는데
1905년 로마의 석공 작업장에서 부러진 라오콘의 팔이 발견되었는데 굽은 팔 모습이었다고.

라오콘이 발견돼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농부에게 값을 치루고 성베드로 성당으로 조각을 가져오게 했는데

성당 합창대가 노래를 부르고 성가대원들이 마차위의 조각품에 꽃을 던지며 환영을 했다고 한다.

이른바 라오콘이 바티칸 박물관의 최초 컬렉션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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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베드로 성당 지하에는 성인과 교황등 100여명의 묘가 있는데 성당내에도 몇분의 시신이 있는데 그중의 한분이 요한 23세이다.

이분은 시신이 썩지 않아 시체위에다 석고로 떠서 성당안에 모셨단다.

요한 23세는 교황중 가장 고령이어서 다음 교황이 선출될때까지 징검다리 교황으로 생각해서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감이 없는 분을 뽑은 것이었는데 웬걸...

세상에 대한 방어 정책으로 일관하던 역대 교황과는 달리 '교회의 현대 세계에로의 적응'과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를 내세우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카톨릭 신자뿐이 아닌 선의의 모든 사람들에게 보낸 회칙엔 종교생활 쇄신, 인권, 노동문제, 세계평화, 남북문제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카톨릭에서 갈려나간 영국 성공회 대주교를 만나고 유대교 종교 지도자도 만나는 등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를 몸소 실천하셨다.

1944년 프랑스 주재 교황청 대사로 재직할 땐 나찌 협력주교를 파직하는 한편 프랑스에 감금된 독일군 포로를 인간적으로 대우하고
조속히 귀국하도록 했고, 포로들 중 신학생들을 신학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니 오지랖과 영성의 깊이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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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3세의 전임 비오12세는 말할것도 없고 시스티나 천정화를 그리게했던 율리우스2세, 레오10세, 알렉산데르 6세, 클레멘트8세 등등

정부를(애인) 두고 공공연히 자기 자식을 드러내기도 하고 권력이나 땅, 돈을 위해 전쟁을 하고 권위적, 귀족적이어서 사치와 낭비를 하느라

교황청의 국고가 비나보니 면죄부를 팔고, 성직 매관 매직을 한 교황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어 오다가 제대로 된 진짜 교황을 보니

존경스럽다.

1962년 9월에 한국의 순천시에 수재의연금 1만달라를 보내시기도 했다니 교황 요한 23세와 한국은 인연이 깊다.

순명, 청빈, 순결이 성직자의 본분이건만 본분과 전혀 아니올씨다로 산 교황과 성직자들이 영어 단어도 만들었다.

Nephew 와 N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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